다수의 홀이 갖춰진 경기장에서 정지된 공을
골프채로 쳐서 홀에 넣는 경기로,
경기 종료까지 타수가 적은 사람이 이긴다.
경기는 1번부터 18번 홀까지 차례로 규칙에 따라
클럽으로 공을 치면서 행해지는데,
공을 친 횟수가 적은 사람이 승자가 되며,
18홀의 경기를 1회전 경기라고 한다.
걷는 거리는 약 6km,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에서 4시간이 표준이다.
골프의 기원은 네덜란드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놀이가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골프로 변화되었다는 설과
스코틀랜드의 양치는 목동들이 지팡이로
돌을 쳐서 구멍에 넣던 것이 골프로
발전되었다는 설, 그리고 로마제국이
스코틀랜드를 정복하였을 때 군사들이
골프와 비슷한 놀이를 하던 것이
스코틀랜드에 남아 골프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현재와 같은 골프 경기가 시작된 것은
15세기 중엽 스코틀랜드에서 비롯되었다.
1575년 스코틀랜드의회는 골프에 너무 열중하여
국방을 위한 활쏘기훈련을 소홀히 한다 하여
골프 금지령까지 내렸으나, 점점 번성하여
왕후나 귀족들도 골프를 즐기게 되었다.
그 뒤 1754년 22명의 귀족들이 모여서
"Saint Andrews Golf Club"을 형성하였고,
1834년 윌리엄 4세가 여기에
"Royal and Ancient Golf Club"이라는 명칭을
붙여 줌으로써 영국 골프 클럽을 통합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13개 항목의
골프 규칙이 성문화되었다.
1860년 처음으로 전 영국 오픈 선수권대회가
프레스트 위크 코스에서 개최되었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골프는 영국에서만 성행했다.
그 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과 일본, 한국
등지에도 보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1888년 스코틀랜드 출신인
레이드가 뉴욕의 욘커스(Yonkers)에 처음으로
세인트앤드류스 골프클럽을 만든 뒤,
1894년 미국 골프협회가 설립되면서
1930년대에는 영국을 압도하는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골프는 1900년 정부 세관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원산 바닷가에 있는
세관 구내에 6홀의 코스를 만들어
경기를 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1919년 5월 효창공원에
미국인 댄트(Dant,H.E.)가 설계한
9홀의 코스가 생겼고, 1924년 청량리에
새로운 코스가 생겼으나
주로 외국인들의 경기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골프가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영친왕(李垠)이 골프장 대지로 군자리 땅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고, 경기장 건설비로 2만 원을
하사하여 만든 전장 6,500야드의 18홀
서울컨트리클럽이 1929년 개장되면서부터이다.
일반인에게 골프가 보급된 것은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가 결성되면서부터인데,
이 때 골프를 가르칠 지도자가 없어
1933년 일본에서 陳淸水·中村兼吉 등을
서울에 초청하여 경기지도도 받고
시범경기도 하였다.
그 때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박용균·장병량 등
약 50여 명의 골퍼가 있었다.
그 뒤 1937년 조선골프연맹이 결성되었고
1941년 우리 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연덕춘(延德春)이 일본 오픈대회에서
26세의 나이로 우승하였다.
그 뒤 광복 및 6·25전쟁으로 침체되었던 골프는
1953년 서울컨트리클럽이 재건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 세계골프역사박물관
- 주소 :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528
- 시간 : 평일(10~19시), 일요일ㆍ공휴일 휴무
- 가격 : 성인(5,000원), 학생 및 유아(3,000원)